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최지혜와 함께한 하루)
이번 주 초에 최지혜랑 점심을 먹었다. 서로 한숨을 쉬고 욕을 하며 점심을 먹고 서점엘 갔다. 여자랑 둘이서 서점에 간 건 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최지혜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사겠다고 간 서점에서 우리는 애완동물 코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최지혜는 개를
키운다고 했고 (인간 나이 76세에 육박함) 나는 고양이를 키우니까, 최지혜는 개 책을 봤고 나는 고양이 책을 봤다. 서로 책을 보다가 신기한
내용이 있으면 헐 이거봐 라면서 떠들어댔는데 서로의 이야기는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왠지 새삼 우스워서 우리 뭐하는
거냐 이러고 웃고 말았다. 아 참 그 전엔 <그리스인 조르바>를 서가에서 좀 찾아봤다. 최지혜는 귀찮다고 도서검색대를 쓰자고 했지만
나는 자력으로 찾아보겠다고 선언하고, 자력으로 찾았다. 난 좀 대단함. 근데 얘가 책을 보더니 졸라 두껍다고 절대로 안 본다는 거다. 왠지 나는
우쭐해졌다. 우쭐해진 내 눈에 마르케스 책이 들어와서, 난 이것도 봤다, 라고 또 자랑을 했는데 걔한테는 별로 자랑으로 접수되지 않은 것 같다.
서가에는 여자들이 열라 많았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댈러웨이 부인, 채털리 부인의 사랑, 거미 여인의 키스, 뭐 기타 등등. 그래서
우리는 그거를 한데 모아놨다. 최지혜랑 같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 혼자라면 절대 네버 못했을 거야. 나로서는 엄청난
일탈이고 모험이었다. 아직도 알바한텐 좀 미안해. (연민의 칼날을 또 혼자 휘두르고 있음)
암튼 그게 이번 주 초의 일이다. 내 입사 동기 중에 ㄱㅇㅇ이라는 애가 있는데 (얘는 이름이 특이해서 막 쓰면 검색에 걸릴 지도
모른다. 별명으로 어니언을 쓰고 있으니 그냥 어니언씨라고 칭하겠다.) 최지혜랑 어니언씨는 3,4년 전 피판 자봉으로 만났다고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1) 오늘 걔네 둘이 같이 점심을 먹다가 서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최지혜가 조르바라고 하자, 어니언씨도
찌찌뽕이라고 했단다. 그래서 서로 놀라워하며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2 세상은 열라 좁아요) 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 얘기를 막 했는데
최지혜가 나의 이야기를 한 것이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스티커부터 구구절절 이어진 우리의 더러운 이야기를.. 그러자 어니언씨가 걔는 어떤
애냐고 물었고, 최지혜는 뭐 84년생이고 여자고 어쩌고 저쩌고 프로필을 대강 읊었다고 한다. 어니언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혹시 돌고래?'라고
물었다고 한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3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낼 때 장난할 때도 어디에선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어니언씨 이어 말하길 걔 좀 이상해서 좋다며.. 나에겐, 본성을 잘 숨기다가 뭔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 앞에서는 무장해제하고 나를 드러내는
못된 버릇이 있는데, 사실 어니언씨에게도 두어 번 그랬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화제에 올랐고, 최지혜는 그 새를 못 참고 우리들의
야심찬 다음 주 매드포갈릭 습격에 대한 계획을 다 불어버렸다!
매드포갈릭 습격이란? 회사 앞에 매드포갈릭이 오픈했는데 거기가 좀 열라 비싸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최지혜와 난 다음 주에 가서 엄청
비싼 걸 마구 시킨 다음 서로의 카드를 뒤집어 엎어서 섞어놓고 알바에게 하나 찍으라고 해서 계산하는, 이른바 카드 복불복을 하기로 한 것이다.
돈지랄이다. 그냥.
그 이야기를 들은 어니언씨 역시 심하게 흥분하며 자기도 끼면 안 되겠느냐고 굽신댔다고 했다. (최지혜가 오후에 메신저로 해준
이야기들이니까) 여튼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너그럽게 그러자고 했다. 나는 관대하다. 어쨌든 이게 오늘 만들어진 조르바 미투 밴드의 정체며
본질이며 끝이다. 이런 전차로 다음 주엔 매드포갈릭에 갑니다.
원래 미투 친구가 최지혜밖에 없었는데 (무슨 커플 미투도 아니고) 오늘 어니언씨 한 명, 장박이랑 오늘 친구를 맺어 나의 총 미투
친구는 세 명이 되었다 '▽'
친구 돌고래와 어니언 이야기. 너무 잘 쓴 글이라 돌고래 블로그에서 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