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청. 신형철
오늘은 시 말고 노랫말을 읽자. 언젠가 한번은 그러려고 했다. 시의 본적은 노래니까. 본래 노랫말이었으나 노래와 분리되어 떨어져나오면서 지금처럼 눈으로 읽는 시가 되었다. 그러니 시와 노랫말은 여전히 은밀한 혈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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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박진영이 쓰고 있는 원더걸스의 노랫말들은 어떤가. '아이러니' '텔 미' '소 핫' '노바디' 등 한두 개의 영어 단어들을 제목으로 삼고 이를 후렴구에서 유혹적으로 반복한다. '의미' 보다는 '울림'을 고려한 계산이다. 문학적으로는 거의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대중음악의 노랫말로서는 영리하지 않는가. 그렇다고는 해도 좀 견디기 힘든 경우들도 있다. "사랑은 뭐다 뭐다 이미 수식어 Red Ocean / 난, breakin' my rules again / (...) /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억 개의 나의 Crystal / 마침내 시작된 변신의 끝은 나 / 이것도 사랑은 아닐까?" (동방신기. <주문>) 말이 안 되는 문장들이 어설픈 영어 문장과 뒤섞여 거의 아수라장이다. 십여 년 전 HOT 시절부터 이 기획사 출신 팀의 노랫말들은 요령부득이었다. 이 기획사에는 교열부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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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내가 가장 편애하는 작사가는 이소라와 박창학이다. 이소라는 흔한 소재들을 평범하고 순한 단어들로 노래할 뿐인데도 어떤 히스테릭한 깊이에 도달하곤 한다. 그의 노랫말에 은은히 흐르는 리듬감은 특히 일품이다. 그는 아마도 발라드 장르에서 각운을 배려하는 거의 유일한 작사가일 것이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 시간은 흐르고 있고 /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있다 / (...) / 사랑은 비극이어라 / 그대는 내가 아니다 /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바람이 분다>. 2004) 마지막 세 문장은 정곡을 찌르면서 빈틈없는 보폭으로 걸어간다.
윤상의 모든 음악에 노랫말을 붙이고 있는 박창학은 국어 교사 출신답게 정확한 문장을 구사해서 우선 미덥다. 그가 <근심가>나 <백투 더 리얼 라이프> 등에서처럼 정색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할 떄 그의 노랫말들은 어딘가 어색해지지만, "이젠 출발이라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 / 한낮의 햇빛이 커튼 없는 창가에 눈부신 어느 늦은 오후 / 텅 빈 방 안에 가득한 추억들을 세어보고 있지 우두커니 / 전부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너의 기억들을 혹시 조금 남겨두더라도 나를 용서해" (<이사>, 2002) 에서처럼 힘 빼고 겸손하게 감정의 기미들을 포착할 때 그의 노랫말은 아늑한 관조의 미학 같은 것을 품는다.
최근의 사례로 단연 인상적인 것은 '루시드폴'과 '언니네 이발관'의 근작들이다. "날개, 내 손끝에 닿지 않는 곳, 작은 날개가 생겼네. / 시간, 모질게도 단련시키던. 우리 날개가 되었네." (<날개>. 2007) 루시드폴의 노랫말은 시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시다. 그의 서정성은 당대의 시인들과 경쟁한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 /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 나는 네가 웃은 만큼의 웃음 /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가기 마련이지만" (<가장 보통의 존재>, 2008) 언니네 이발관의 독특한 감성이야 이미 유명하거니와, 이 노래는 제목부터가 이미 시적이다. 어색한 듯 결합된 세 어절이 만들어내는 이 쓸쓸한 뉘앙스. 길게 말할 여유가 없어 아쉽다. 백문이 불여일청.